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Epictetus)는 해방된 노예였고, 주로 거리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사실 그는 대중을 위한 철학 강의를 하지도 않았고, 철학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Meditations)』은 게르만족 원정 기간 밤에 다뉴브 강가의 막사에서 개인적으로 성찰한 내용을 적은 것으로, 오직 그 자신을 위해 쓴 책이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스토아 철학은 참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대체 어떤 철학이길래, 노예가 대중 강의를 하고, 황제가 밤 늦은 시간 홀로 자기성찰에 잠기는 걸까요?
스토아 철학의 사상적 뿌리는 소크라테스(Socrates)와 견유학파의 대표 철학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 the Cynic)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창시자는 키티온의 제논(Zeno of Citiu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논은 기원전 300년경 인물로, 원래는 염료 상인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보라색 염료를 싣고 아테네로 들어오던 중 배가 난파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는 아테네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소크라테스에 대한 책을 접한 뒤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주로 아테네 한복판의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ē, 울긋불긋한 강당 또는 채색 강당)에서 제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곳에 모이게 되었고, 제논의 철학을 배우고 설파하는 이들을 ‘스토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인 스토아주의자(The Stoics)라고 부르게 됩니다.
스토아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세상을 보는 관점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는 이러한 스토아 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앨버트 앨리스(Albert Ellis)와 더불어 CBT의 창시자인 아론 T. 벡(Aaron T. Beck)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BT의) 철학적 토대는 수천 년 전, 특히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에 대한 인간의 개념(conception) 또는 오해(misconception)를 감정적 동요의 핵심으로 여겼던 스토아학파 때 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1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중 한 명인 세네카는 감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서술을 많이 남겼습니다. 다음은 세네카가 화에 대해 기술한 내용으로, 우리가 감정을 단지 수동적으로 경험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함을 보여줍니다. “화는 잘못된 느낌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된다. 하지만 단지 화가 느낌에 의해서만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마음의 개입은 전혀 없을까? 그게 아니면, 화를 내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어떤 동의라도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화가 저절로 나는 것이 아니며, 오직 마음이 그에 동의할 때만 나타난다고 본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느낌과 이를 응징하고자 하는 갈망을 받아들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며 그럴 경우 처벌받아야 한다는 두 가지 명제를 더하는 것은 그저 무의식적 충동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간단한 과정처럼 보여도 깨달음, 분개, 비난, 응징과 같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일이 있었든, 마음의 동의 없이는 이러한 과정이 일어날 수 없다.”2
이렇듯 스토아 철학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우리가 생각과 감정에 대해 숙고하면서 더 적합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스토아 철학이 강조해 온 또 다른 덕목 중 하나입니다. 회복탄력성은 되돌아오거나 다시 튀어 오름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resilio’로부터 온 단어입니다.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찌그러트렸다가 놓으면 다시 원래대로 모양을 회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은 탄성과 같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찾고 대처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회복탄력성은 무적보다는 적응력에 가깝습니다. 심리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고난과 도전에 직면할 때 꺾이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회복탄력성의 원리이자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모습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회복탄력성 하면 흔히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살아남아 의미치료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프랭클 외에도 스토아 철학에 기반한 회복탄력성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 낸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로 미국 해군 제독인 제임스 B. 스톡데일(James B. Stockdale)입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붙잡힌 뒤 일명 ‘하노이 힐튼’이라 불리는 북베트남의 악독한 포로수용소에서 7년 반 동안 죄수 생활을 합니다. 당시 그는 4년을 독방에서 지냈고, 2년은 족쇄를 차고 있었습니다. 스톡데일이 있던 감방에서 두 칸 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나중에 애리조나 상원 의원이 된 존 매케인이었습니다. 스톡데일은 북베트남 군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다른 포로들의 목숨을 보존하면서도 미군의 군사 기밀은 넘기지 않는 어려운 역할을 해냈습니다. 일찍이 에픽테토스의 『편람(Encheiridion)』을 여러 차례 정독했던 스톡데일은, 환경이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환경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환경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계속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용되어 있던 포로들에게도 ‘우리가 운명의 주인이다.’라는 마음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스톡데일은 스토아 철학이 그저 수천 년 전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늘어놓는 말들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가장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스토아주의자 중 한 명인 팀 페리스(Tim Ferriss)는 양극성장애 환자로, 프린스턴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토아주의자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보고 가능한 경우를 떠올려 미리 체험해 보며, 우리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려 보라고 합니다. 이 간단한 세 가지 실천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해결책이 정작 또 다른 문제가 되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공감(empathy)입니다. 흔히 스토아 철학을 자기 절제나 극기에 경도된 이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대로 스토아 철학은 세계시민(cosmopolitan)으로서의 전 지구적 유대감과 공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히에로클레스(Hierocles)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깥쪽 원에 있는 것들을 우리가 속한 원 안으로 옮겨 담아야 한다. 세 번째 원에 있는 사람들을 두 번째 원에 있는 사람처럼 존중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3
그는 우리가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좁고 명확하게 긋기보다는, 더 많은 세상 속 존재들을 ‘나’의 존재 안에 포괄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타인을 나의 일부로 여기며 더 공감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습니다.
본 자료는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나경세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