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2020년 1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병원이 폐쇄되고, 식당과 대중시설들이 문을 닫고, 격리 코호트가 만들어지고, 온 국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며 하루 하루를 지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시기가 길어지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용어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이후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로 변경되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이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것으로 방역정책 상 꼭 필요한 요소였으나, 한 편으로는 사람들의 관계 단절을 초래하여 ‘코로나 블루(‘코로나19’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가 합쳐진 단어로, 신종 전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집합적 형태로 나타나는 우울감을 지칭하는 신조어)’ 1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 이후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더 안도하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물리적 거리의 가까움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2 회식자리에서는 술잔을 돌리지 않게 되었고, 음식도 나눠 먹지 않으며, 옆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불안함은 방역수칙을 더 까다롭게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겐 더 심했을 것입니다. 가족 중에 노약자가 있는 경우,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들, 방역정책을 같이 수립하고 진행하는 여러 공무원들, 특히나 전세계에서 가장 방역수칙을 잘 따랐던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방역수칙을 잘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염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감염에 대한 불안감도 날로 극심해졌습니다.
건강염려증(Illness anxiety disorder 또는 hypochondriasis)은, 어떤 자극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증상을 평가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등의 안심추구행동(reassurance-seeking behavior)을 하게 되고, 안심추구행동이 반복되면 자극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 인지행동적 모델로 설명됩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 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을 필요 이상으로 확인하고 일일 확진자 수 및 확진자의 동선 등에 관련된 정보를 탐닉하게 됩니다.3 그런 안심추구행동이 반복되면서 일부 사람들은 더욱더 바이러스 감염병 상황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건강염려증에는 개인의 심리적 행동 패턴도 역할을 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심리현상인, 불확실성에 대한 불내응성(intolerance of uncertainty)이 큰 사람들일수록 바이러스에 더 불안해하고 집착합니다.3 매일 미디어를 통해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걱정하거나, 때로는 방역수칙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신과는 달리 주변의 친구들이 여행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보고 불안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여행할 자유를 억압받는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합니다.
팬데믹에서 의료진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재난에서는 그 피해가 병원까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의 피해는 병원까지 전파될 수 있습니다.3 이는 911테러와 같은 재난에서는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한 소방공무원이 더 박수를 받은 반면, 코로나 팬데믹에서는 의료진들이 더 박수를 받은 이유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의료시스템의 붕괴 위험을 염려했으며,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응급상황 대책 마련 좌담회를 열기도 했습니다.4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진들은 이를 버텨냈고, 그 중 적지 않은 의료진들이 소진을 경험하고 병원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예전과 같이 혹독하게 버티며 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함이 병원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국민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정작 의료진들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지대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출근을 못 하게 되면 다른 동료들이 힘들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고립되어 지냈습니다. 또한 치료를 해 오던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제대로 된 애도조차 하지 못하고 환자를 보내야 했습니다. 잦은 환자의 사망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도 반응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5 그럼에도 환자가 낫기라도 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열을 재야 하고 손을 씻겨야 하고 방역정책을 따라야 하는 등, 거의 준 의료진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온라인 수업까지 준비해야 했습니다.6 그럼에도 교사들의 노고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잊혀진 영웅들’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잊혀진 영웅들에는 방역정책을 수립하고 전개해 나가는 공무원들과, 감염자 이송을 담당한 소방공무원들도 포함됩니다. COVID-19 사태 속에서 공무원들은 엄청난 업무량을 겪었으며,7 공무원들은 그들의 역할 자체가 공무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감염 확률이 높은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병원을 찾을 때까지 긴 시간동안 거리에서 돌아다녀야 했고, 때로는 전염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감염 및 격리로 인력이 줄게 되어, 남은 인력으로만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비난받는 기분을 느껴야 했고, 건강 악화를 걱정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후유증들이 남으면서 long-COVID라는 증상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암 환자들은 병원이 폐쇄되고 외래 치료나 수술이 연기되던 팬데믹 초반에는 질병의 악화를 걱정했으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빨리 빨리 문화’로 결국 약 2주 정도의 지연만 있었을 뿐, 그 이후에는 오히려 병원에 오면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했습니다. 암 환자들은 잠을 잘 못 자면 면역력이 저하된다는 역기능적 믿음을 갖는 경우가 흔한데, 면역력이 저하되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저질환이 악화되거나 재발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바이러스에 더 걱정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8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많이 적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당국은 외국에 비해 늦게 마스크 해제를 선언했고, 이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팬데믹은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정신건강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요?
- 첫째, 과도한 불안감을 버려야 합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탐닉하며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대신, 철저한 위생수칙과 방역정책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적절한 물리적 거리두기, 위생과 마스크 착용에 집중하면 됩니다.
- 둘째, 물리적 거리두기와 정서적 거리두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정서적으로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두더라도 정서적으로는 고립되지 않도록 주변의 지인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 셋째, 불안과 분노를 구분해야 합니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쌓이다 보면 다른 이들에게 분노가 표출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분노의 감정은 자신 스스로를 힘들게 하므로 이를 잘 조절하여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연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만 열심히 방역수칙을 지킨 건 아닙니다. 병원 내 의료진은 물론, 다른 많은 직원들이 내원객들의 열을 체크하고, 오염물을 처리하고, 시설물들을 소독하며 창구에서 수납처리를 합니다. 모두들 함께 노력하며 지냈습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같이 이겨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의 위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기는 또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좀 더 안전하고 덜 위험하게 다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안과 어려움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일상생활과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좀 더 집중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잘 조정하며 건강하게 생활했으면 합니다.
본 자료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석훈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