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우울장애와 인지기능
“주요우울장애에서 인지기능의 저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00년도 초반만 해도 주요우울장애에서 인지기능의 저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주요우울장애에서의 인지기능 저하는 우울증상이 호전되면 당연히 동반하여 호전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주요우울장애에서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요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인지기능 저하가 우울 증상과는 구별되는 독립적인 병리라는 증거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다중작용점을 기전으로 한 새로운 항우울제들이 개발되면서,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 우울감 외의 다른 증상, 그 중 인지기능은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DSM-5 진단기준에도 집중력 저하가 주요우울장애의 진단기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주요우울장애 증상이 지속되면 치매에서 관찰되는 신경퇴행성 변화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면서, 주요우울장애에서의 인지기능 저하가 점차 하나의 독립적인 병리로서 간주되는 분위기입니다.
주요우울장애의 아형 : 멜랑콜릭 우울증과 비정형 우울증
최근의 연구들은 주요우울장애를 두 가지 특징적인 타입으로 나누어 인지기능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멜랑콜릭 우울증(melancholic depression)과 비정형 우울증(atypical depression)입니다. 멜랑콜릭 우울증은 외부자극에 대한 무감동증, 불면증, 체중감소, 식욕저하, 저예민성, 기분변동성 저하, 죄책감, 아침에 심한 무기력 증상 등을 특징으로 하는 주요우울증의 아형인 반면에, 비정형 우울증은 외부의 긍정 자극에 반응하여 기분의 호전, 과수면, 체중증가, 식욕증가, 거절에 대한 민감성, 팔다리의 무거운 느낌과 기분변동성 증가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주요우울증의 한 아형입니다. 임상 현장에서 어떤 한 아형의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형적인 환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특정 아형의 일부 특징을 만족하는 환자를 만나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최근 들어 비정형 우울증 환자의 비율이 점차 증가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1].
표. 멜랑콜릭 우울증과 비정형 우울증의 아형별 특징
주요우울장애의 아형에 따른 인지기능 장애
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면 주요우울장애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상반된 연구결과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요우울장애의 타입에 따른 인지기능 변화 양상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시행된 메타분석 결과에 의하면 멜랑콜릭 타입의 주요우울장애에서 비메랑콜릭 타입의 주요우울장애 환자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인지기능의 저하가 일관되게 관찰되었습니다[2]. 이러한 인지기능의 저하는 나이, 성별, 항우울제 사용기간 및 증상의 심각도 등을 모두 고려한 이후에도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러한 멜랑콜릭 타입 우울증에서의 인지기능 저하는 항우울제 치료로 우울증상이 개선된 후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림. 멜랑콜릭 우울증과 비정형 우울증에서의 인지기능 저하 [2]
특히 멜랑콜릭 타입 주요우울장애에서 문제가 되며 심각한 기능저하를 보이는 인지기능 영역은 verbal fluency, digit span, Trail making test A & B, WAIS digit symbol coding 등인데, 항우울제 투여 4주 및 8주 이후에도 기능저하가 호전되지 않고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6개월간 장기간 치료 후에도 기능저하가 지속됨이 관찰되었습니다.
만성 주요우울장애에서의 신경 퇴행
“주요우울장애를 오래 앓으면 치매와 같은 기억력저하가 발생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동물실험 및 임상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만성 우울증 환자의 뇌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 사이의 유사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울증이 만성화되면 알츠하이머 치매에서 관찰되는 신경 퇴행성 변화를 촉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3].
- 만성적인 low-grade inflammation과 스트레스로 인한 glucocorticoid 증가는 인슐린의 비반응성을 유발하며, 신경세포들이 glucose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 우울증 환자의 proinflammatory cytokine과 glucocorticoid 증가는 tryptophan-kynurenine pathway를 활성화시키고 당뇨병성 kyneurenine metabolites를 합성하며, 이는 NAD+ 합성을 억제한다.
- Glucose가 astrocyte나 neuron으로 이동하는 것이 억제되고, 이는 metabolic network의 장애를 초래한다.
- 우울증 환자의 mitochondria의 구조적 손상으로 인해 neuron의 기능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high-energy phosphate의 합성이 억제된다.
아마도 상기 과정들을 거쳐 알츠하이머 치매에서 인지기능의 저하를 유발하는 신경변성의 경로가 만성적 우울증 환자, 혹은 멜랑콜릭 타입의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요약 및 과제
요약하면, 최근까지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의 인지기능 연구결과가 일관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주요우울장애 타입에 따른 병리적 특이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연구 대상자를 모집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멜랑콜릭 타입의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는 인지기능의 저하가 일관되게 관찰되며, 항우울제 투여로 기분증상을 치료한 후에도 이러한 인지기능의 저하가 유의미하게 지속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만성적인 주요우울장애 상태가 지속되면 알츠하이머 치매에서 보이는 신경퇴행성 변화가 관찰되는 바, 주요우울증의 완전한 관해 치료 및 인지기능 회복에 대한 인식이 더 강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향후 임상 연구에서는 주요우울장애의 아형을 나누고 연령에 따른 뇌기능 변화도 엄밀히 통제하여, 인지기능의 변화를 살펴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본 자료는 대한불안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승환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정리한 것이며,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