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우울증(late-life depression)은 노년기에 들어서 새롭게 우울증이 발생한 경우(late-onset depression)와 이전에 있던 우울증이 노년기에 재발 또는 노년기까지 지속되는 경우를 모두 지칭합니다. 노년기에 새롭게 발생하는 우울증은 젊어서 발생하는 우울증과는 달리 뇌의 퇴행성 변화와 관련이 있고 위험요인이나 임상 양상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신체 질환이나 뇌의 노화가 우울증의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젊어서 발생한 우울증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가능성을 높인다거나, 우울증으로 인한 나쁜 식습관과 적은 활동은 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이고 이는 뇌의 퇴행성 변화에 기여하기도 합니다.1또한 노인에서 새롭게 발생한 우울 증상은 그 자체로 별개의 우울장애라기보다는 알츠하이머병의 전구 증상(prodromal symptom)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노인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젊은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발병 원인의 이해 및 치료 설계에 있어 이러한 신체 질환, 인지저하, 혹은 그 역의 관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인 우울증의 약물치료에는 항우울제가 가장 널리 활용되지만 젊은 성인에 비해 약물의 효과가 덜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erotonin and 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s, SNRI),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 TCA) 등 약물 종류에 따른 효과의 차이는 뚜렷하지 않고 대략 8의 NNT(number needed to treat)a를 보이는데, 이는 성인에서 보이는 5 정도의 NNT 보다는 높습니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울제는 노인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노인은 젊은 성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더 취약하고 때로는 그로 인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치료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편이 부작용으로 인하여 부상 등을 초래하는 쪽보다는 더 바람직합니다.
따라서 약물을 보다 소량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증량할 것을 권고하며 (start low and go slow), 치료의 시작과 모니터링에 있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4,5
약동학(pharmacokinetics)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노인의 신체는 체지방의 비율이 높아 지용성 약물의 분포용적(volume of distribution)이 증가하므로, 벤조디아제핀 (benzodiazepine) 계열 약물의 제거 반감기가 젊은 성인에 비해 최대 두 배까지 늘어나 체내에 축적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구체여과율 감소로 인하여 신장으로 배설되는 약물의 제거 반감기가 증가할 수 있어 노인의 약동학은 젊은 성인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력학(pharmacodynamics)적으로는 노화에 따라 도파민 D2 또는 세로토닌(5-HT)과 같은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 수가 감소하여 약물의 혈중농도가 낮더라도 약물의 수용체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인은 적은 용량의 약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성인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량 범위 내에서도 부작용을 겪을 수 있습니다.5,6
항우울제는 기립성 저혈압 혹은 그 외의 알 수 없는 이유로 낙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데, TCA뿐만 아니라 SSRI도 그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인에서의 낙상은 고관절 골절과 같은 불량한 예후를 갖는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경과 중에 확인이 필요합니다.7잘 넘어지거나 중심을 잡기가 어려운지, 또는 어지럼증이 있는지를 환자에게 질문하여 낙상의 위험을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진료실에 들어올 때의 환자의 걸음걸이를 관찰함으로써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평가가 필요한 경우, 일자 보행 검사(tandem gait test) 등의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함으로써 환자가 균형을 잘 잡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8
또한 TCA와 일부 SSRI 등 약물 사용 시에는 반드시 항콜린 작용(anticholinergic effect)에 의한 환각, 인지 기능저하, 섬망 발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구역감이나 식욕 감소와 같은 부작용도 젊은 성인에서는 번거로운 정도의 증상이라면, 노인에서는 체중 감소와 근력 저하, 이로 인한 쇠약(deconditioning)으로 이어지는 등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9
노인에서는 고혈압, 당뇨 등 원래 가지고 있는 신체 질환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약물 선택 시 상대적으로 약물상호작용이 적은 약이 선호됩니다.
그렇지 않은 약물이라면, 환자가 복용하는 다른 약물들을 조사해야 안전하게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라도 다른 진료과에서 처방된 약물이 치료 도중에 변경될 수 있어, 차후 새롭게 문제가 유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약물의 혈중농도가 변하더라도 독성이 덜 나타나는 치료 지수(therapeutic index)가 큰 약물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다행히도 SSRI 등 많은 항우울제들이 그러한 약물에 해당됩니다.5,9 달리 말하자면, 많은 경우에는 항우울제 처방에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필요에 따라 치료지수가 작은 약물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같이 복용하는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어 보다 소량으로부터 시작하고 일반적으로 처방하는 용량보다 낮은 용량에서 증량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약물의 상호작용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SSRI는 출혈 경향성을 높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뇌졸중이나 협심증의 치료에 흔히 사용되는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경우라면, 특별히 주의가 필요합니다.9,10
수면제, 진정제 계열의 약물은 노인 우울증에서도 흔히 쓰이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인에서의 약동학, 약력학적 변화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약물에 의한 낙상과 그로 인한 합병증은 드물지 않기 때문에 작용시간이 짧은 약물을 주로 선호하게 됩니다. Z-drug(non-benzodiazepine hypnotics, 예: 졸피뎀)의 경우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나 여전히 약물 작용시간 동안의 낙상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고 블랙아웃(blackout)도 흔히 보고되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5
환자가 항우울제에 잘 반응하지 않을 때에는 젊은 성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전형 항정신병약제(atypical antipsychotics)가 병용요법으로 흔히 고려됩니다.5
다만 추제외로 부작용(extrapyramidal symptoms, EPS)이 잘 생길 수 있고, 낙상 등으로 인한 골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약물을 증량할 때에는 항정 상태(steady state)에 도달하는 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물이 항정 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약물 반감기의 5배이고 그보다 빨리 약물을 증량하는 경우에는 약물의 항정 상태 농도가 예상보다 더 높은 상태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대사증후군 등으로 야기되는 심뇌혈관질환(cardiocerebrovascular disease)이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거의 모든 종류의 약물에서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어,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계속해서 나오는 보고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11
경험적으로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은 경우 또는 양극성 장애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 기분 조절제를 병용 혹은 단독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이들 약물의 경우 고령에서 추체외로 증상을 종종 일으키기 때문에 역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고,5 부작용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일자 보행 검사(tandem gait test), 잡아당기기 검사(pull back test) 등의 검사를 통해서 그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다른 약물치료에 반응이 적은 경우 정신자극제를 사용해 볼 수 있는데, 기분 증상에는 효과가 있지만 인지 기능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12
혈액검사나 심전도 측정을 통해서야 알 수 있는 이상이기는 하지만 저나트륨혈증(hyponatremia)과 심전도 상의 QT 간격 증가와 같은 문제는, 흔하지는 않지만 혼동이나 경련, 심정지와 같은 치명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나트륨혈증은 SSRI나 SNRI에서는 비교적 흔하고, TCA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문데, 환자가 복용하는 다른 약물 중 일부가 저나트륨혈증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엔 그 위험성이 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QT 간격의 증가는 TCA에서 잘 알려져 있고, 일부 SSRI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환자가 복용하는 치료 약물에 의해서 그 부작용이 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검사가 가능하다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권고됩니다.13,14
요약하자면, 환자의 평가에 있어 노인 신체의 생리적 변화, 뇌질환 등의 신체 질환, 그리고 이러한 질환과 우울증의 상호작용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또한 약제 처방 시, 병용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낮은 용량으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약물을 증량함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불어 혈액검사 등을 참고할 수 있다면 약물을 안전하게 처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a 약물에 대한 반응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물에 반응하는 대상자를 한 명 더 늘이기 위하여 위약과 비교했을 때 몇 명이 약을 더 먹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낮을수록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다.
본 자료는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황재연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