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M]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 회복탄력성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어려움과 고통으로 가득한 여정입니다. 트라우마는 극도로 위협적이거나 끔찍한 사건으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커다란 고통 중 하나입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평생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비율은 70-80%에 이릅니다.1 게다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이상 경험하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이상 맞닥뜨리게 되는 불청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재난, 범죄, 성폭행,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 트라우마의 상황과 형태는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생명과 안녕에 대한 위협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신체는 생존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비상 반응 체계를 가동합니다. 주변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프로그래밍합니다. 중요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계속 재생하면서 충격을 소화하고 기억을 통합하기 위해 애씁니다. 행동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자극을 피하며 적극적으로 안전을 추구합니다. 인지적으로는 너무 고통스러운 부분은 차단되어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영향은 대개 1-2년 안에 크게 줄어듭니다.2 그러나 이러한 회복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포, 죄책감, 분노, 수치심과 같은 강렬한 감정과 온몸에 각인된 기억의 파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내면에서는 맥락을 알 수 없는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한 고군분투가 벌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강렬한 반응이 가라앉고,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습니다. 용기 있는 시도를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어느 순간, 트라우마의 그림자는 옅어지고, 더 이상 몸과 마음을 지배하지 못할 정도로 힘을 잃습니다. 비로소 인생의 키(rudder)를 다시 되찾고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세상은 위험해 보일 때도 있고 악의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보다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본연의 긍정성과 희망을 담아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회복은 트라우마에 맞서 자신의 역량과 차원을 총 동원한 치열한 전투 끝에 얻는 소중한 승리입니다.

  그렇다면 역경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역경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들을 연구하였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지지는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밝혀졌습니다.

안정적인 애착, 가족의 지지, 주변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역경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자원으로 작용합니다. 하와이 군도 내 카우아이섬(Kauai) 연구에 따르면 열악한 가정환경과 알코올 중독 또는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를 가진 자녀들 중 1/3은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3 그들은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고 학업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역경으로부터 보호했을까요? 그들 곁에는 아이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비록 가정 환경은 열악했지만 좋은 친구, 선생님, 이웃과의 사회적 애착은 역경을 이겨내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조절 능력도 중요합니다.

트라우마 사건 자체가 통제력을 벗어난 것이므로 이에 압도되어 무력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때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의 신체적, 정서적 반응을 조절하면 자기 조절 능력이 되살아납니다. 이는 환경에 대한 통제감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효능감으로 이어집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처 전략을 사용하고 고정된 사고 방식 대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유연성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다양한 관점을 취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희망, 낙관성, 감사, 연민, 수용 등의 긍정성은 회복에 필요한 내적 자원을 쌓는데 유리하며,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을 키워 간접적으로 회복에 기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회복 탄력성은 비범한 능력이나 특별한 자원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 건강한 활동, 자기 돌봄, 자신에 대한 믿음, 긍정성과 같은 일상적인 것들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일상의 마법’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4

그러나 개인적인 역량을 갖췄다고 해도 가족, 학교, 지역사회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부정적으로 작동한다면 회복의 궤적은 순탄하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 가족, 사회를 포함한 다층적 체계가 상호작용하며 회복 탄력성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회복 탄력성은 ‘결과’가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회가 역경을 극복하는데 유리할까요? 핵심은 사회적 자본입니다.5

사회적 연결망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 정보와 자원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공통의 의미와 이해, 규범과 가치가 널리 공유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피해를 입은 개인은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집단 구성원이 함께 힘을 모아 역경을 극복하고 미래의 안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상호 신뢰를 의미합니다. 내가 곤경에 처할 때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그 집단은 역경 앞에서 금세 무너질 것입니다. 상호 신뢰, 지원과 네트워크, 사회적 규범, 다양성에 대한 존중, 도덕적 역량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튼튼한 사회는 역경 앞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결속력과 유대감을 높일 것입니다. 구성원들은 힘을 모아 효율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힘, 회복 탄력성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회복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연결과 지지입니다. 서로를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희망과 연민이 담긴 응원을 받을 때 우리의 회복 탄력성이 발휘될 것입니다.

본 자료는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심민영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Norris FH, Murphy AD, Baker CK, Perilla JL, Rodriguez FG, Rodriguez Jde J. Epidemiology of trauma an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in Mexico. J Abnorm Psychol. 2003;112(4):646-656.
  2. Santiago PN, Ursano RJ, Gray CL, et al. A systematic review of PTSD prevalence and trajectories in DSM-5 defined trauma exposed populations: intentional and non-intentional traumatic events. PLoS One. 2013;8(4):e59236.
  3. Werner EE. Risk, resilience, and recovery: Perspectives from the Kauai Longitudinal Study.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1993;5(4):503-515.
  4. Masten A. (2001) Ordinary magic: resilience processes in development. American Psychologist 56(3), 227–238.
  5. Patel SS, Rogers MB, Amlôt R, Rubin GJ. What Do We Mean by 'Community Resilience'?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of How It Is Defined in the Literature. PLoS Curr. 20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