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M]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해

누구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첫사랑과의 이별, 가족의 사망, 친구의 자살, 자녀의 독립 등 인생에서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이중에서도 사별은 죽음이 갖는 비가역성으로 인해 영원한 상실에 해당합니다. 2017년 한 해에만 28만 6,000명의 사람들이 각종 질병과 사고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80.5%는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9.5%는 사고와 자살 등 질병 이외의 요인으로 사망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 뼛속 깊이 파고드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고인을 연상시키는 물건이나 장소, 사람을 피하기도 하며, 아예 고인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거나 먼 곳에 긴 여행을 떠난 것일 뿐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며 자신을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억제하고 애도 과정 중 어딘가에 머무른 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고통스럽더라도 고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비로서 고인이 존재하지 않는 실제적, 심리적 환경에 적응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1

많은 경우에 고인이 생전에 해왔던 역할을 감당하거나 대체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인이 포함되어 있던 미래를 지우고 새로운 앞날을 설계해야 하며, 고인을 돌보고 있었던 사람은 그 시간을 다른 활동으로 채워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의 바탕이 되었던 고인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자원이 요구됩니다. 이렇듯 남은 사람들은 변화된 삶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과 상실로 인한 고통, 고인에 대한 그리움 사이를 오가게 됩니다.2

유가족들은 자신의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지, 과연 애도에 끝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갖습니다. 통상적으로 고인을 떠올릴 때 극심한 고통이 없고, 에너지를 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상황에 재투자할 수 있을 때 애도가 종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우리를 영원히 바꿔 놓는 것이기 때문에 애도를 끝이 없는 여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애도가 잘 진행되어 고통이 사그라든다 하더라도 남은 이들의 삶이 상실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고인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접하면 여전히 일정한 감정이 올라올 것이며, 사회적 관계와 가치관이 변하고 위험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하는 등 상실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결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립니다. 프로이트는 우리 모두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나는 나쁜 일에 희생될리 없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와 같은 믿음도 자신의 소멸을 부정하는 소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현실의 욕망에만 사로잡혀 내달리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그간의 삶을 후회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3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로먼 크르즈나릭은 ‘매일이 작은 죽음의 연속이 되게 하라’는 죽음 개방화 개념을 소개하였습니다. 죽음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더 열정적으로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4 죽음에 대한 교육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을 상기하고 삶의 가치와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죽음을 삶의 뒤로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끌어 올려 적극적으로 다룰 때 두려움이나 당황스러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이 가능해집니다.

남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열하게 죽음을 회피하고 과학을 맹신하며 죽음을 극복하는데 온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상실과 마주하고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 모릅니다. 고인을 통해 삶의 가치를 숙고하고 고인과의 내적인 교류를 이어가면서 나이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 나갈 때 우리는 진정 상실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자료는 심민영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심리학 (2014). 채정호
  2. Grief counseling and grief therapy : a handbook for the mental health (2007), J. William Worden|
  3. 죽음 :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2014). EBS<데스>제작팀
  4. 원더박스 : 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 (2013) 로먼 크르즈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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