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M]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

트라우마는 극도로 위협적이거나 끔찍한 사건으로,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생명의 위협, 심각한 위해, 성적인 폭력과 관련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1. 그 중에서도 집단 트라우마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또는 사회 전체에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건을 말하며, 대형 재난, 전쟁, 테러, 인종학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1집단의 구성원들은 사건에 직접 휘말리거나 간접적인 노출을 통해 공통적인 충격과 상처를 받습니다. 홀로코스트는 가장 잘 알려진 집단 트라우마 중 하나로 역사와 인류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2011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 역시 미국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2015년 국내의 한 언론사가 광복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조사했는데, 6∙25 전쟁, 4∙16 세월호 참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습니다.2

집단 트라우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 건너편에서 벌어진 전쟁, 지진 등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며, 각종 모바일 기기는 참혹한 영상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놓습니다. 사건을 직접 겪은 세대를 넘어 후세대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홀로코스트, 르완다, 보스니아, 캄보디아 등 대량학살 생존자의 자녀들을 조사한 연구들에서 집단 트라우마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에서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이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더 많이 나타났습니다.3트라우마를 경험한 자녀에서 생물학적인 변화가 관찰되기도 하는데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에서 코르티솔(cortisol) 저하가 관찰되었고4, 일부에서 유전자 염기 서열의 변화까지 보고되었습니다.5이처럼 집단 트라우마는 과거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됩니다.

집단 트라우마는 구성원 간의 애착을 손상시키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과 가치감을 떨어뜨립니다.

불안과 불신에 휩싸인 공동체는 루머와 혐오에 취약하며 갈등과 분열이 뒤따릅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 대유행 때 이방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증가했던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6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유대인과 집시가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의 대상이 되어 학살되었고,6매독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각 국가에서는 적대국가의 이름을 본 따 병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7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각 국가에서 이방인 혐오(xenophobia)가 만연했고, 몇몇 국가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격히 증가하여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집단이 구성원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집단 트라우마가 결속력을 더 강화시키는 사례도 있습니다. 공통의 상처를 경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감과 상호 지지가 이루어지고 연대감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속력과 유대감은 역경을 이겨내는 동력이 됩니다. 또 역경의 극복이라는 과업에 집중하게 되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유토피아적 효과도 나타납니다. 기존의 각종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구성원들은 정부와 사회 기관에 개선을 요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합니다. 위기관리 체계가 개선되며 미래의 위험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에서 정의와 혁신을 강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노력이 증가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역경의 극복은 사회적 자본에 달려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자원의 배분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에 대한 신뢰, 집단의 규범, 다양성과 가변성에 대한 존중과 같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공동체를 신뢰하는 사회는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인식이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피해를 입은 구성원이 보호받고 모두가 힘을 합쳐 역경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루머와 혐오를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이들이 고립되거나 모욕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때 당사자는 강력한 사회적 지지를 경험합니다. 당사자의 회복이 촉진될 뿐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사회적 신뢰가 강화됩니다. 누구라도 곤경에 처할 때 집단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튼튼한 사회는 역경 앞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결속력과 유대감을 강화해 나갑니다. 이를 통해 집단이 가진 잠재력과 효능감이 강화되고 긍정적인 집단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본 자료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Center for Substance Abuse Treatment (US). Trauma-Informed Care in Behavioral Health Services. Rockville (MD): 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 (US); 2014. (Treatment Improvement Protocol (TIP) Series, No. 57.) Section 1, A Review of the Literature. Available from: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207192/ Accessed on January 2024.
  2. 박은호. 광복후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사건은 '6·25'. 조선일보(August 12, 2015). Available from: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2/2015081200149.html Accessed on January 2024.
  3. Roth M, Neuner F, Elbert T. Transgenerational consequences of PTSD: risk factors for the mental health of children whose mothers have been exposed to the Rwandan genocide. Int J Ment Health Syst. 2014;8(1):12.
  4. Yehuda R, Bierer LM. Transgenerational transmission of cortisol and PTSD risk. Prog Brain Res. 2008;167:121-135.
  5. Bierer LM, Bader HN, Daskalakis NP, et al. Intergenerational Effects of Maternal Holocaust Exposure on FKBP5 Methylation. Am J Psychiatry. 2020;177(8):744-753.
  6. 유기훈. 코로나 바이러스, 희생양 그리고 한국사회. 오마이뉴스(January 30, 2020). Available from: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7532 Accessed on January 2024.
  7. Zimmer C. Infectious diseases. Isolated tribe gives clues to the origins of syphilis. Science. 2008;319(586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