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처방하기: 정신의학의 새로운 지평

오늘날 정신과 진료는 더 이상 약물이나 정신치료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임상 현장에서 삶의 리듬이 무너지고 생활습관이 악화된 환자들을 수없이 마주한다. 우울, 불안, 무기력, 인지저하 등의 증상은 단순히 병리로 환원되지 않으며, 일상에서 반복되는 비건강한 선택들이 이러한 증상을 유지하고 악화시킨다. 이런 현실 속에서 라이프스타일 정신의학(lifestyle psychiatry)은 치료의 패러다임을 확장시킨다.1

라이프스타일 정신의학은 운동, 식사, 수면, 스트레스 관리와 같은 일상적 건강 습관이 정신질환의 발병과 회복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여러 연구에서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환자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거나 정신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증상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 23건의 연구를 조사한 코크란 리뷰에서는 우울증 치료에 대한 운동의 효과 크기(Cohen's d)가 0.82로 나타나, 상당히 큰 효과 크기를 보였으며,3 최근의 메타분석에서는 운동과 무처치 또는 대조 중재를 비교한 28개의 연구(1,101명 참여)를 분석했을 때 운동이 우울증 증상 개선에 중등도 이상의 강력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4 강박장애 환자 15명에게 12주간 회당 20-40분의 중등도 유산소 운동을 시행한 연구에서는, 강박증상이 유의하게 감소하였다.5 또한, 12주간의 집단 CBT와 함께 주3회 운동 처방을 병행하였을 경우와 CBT 단독 치료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운동 처방을 병행했을 때 강박증상 개선에 있어 훨씬 큰 효과 크기를 보였다.6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운동으로 사회불안증상이 감소하고 주관적 웰빙이 향상되었는데, 효과 크기는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프로그램 (MBSR)과 동등한 수준이었다.7

이처럼 신체 운동은 우울증, 불안장애, 물질사용장애 및 신체형 장애 등 광범위한 정신질환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인지 기능 개선, 정서적 안정, 자아 효능감 회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운동은 두려운 신체감각에 비의도적으로 노출되게 함으로써 불안 민감성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 유발 상황에 대한 생리적 회복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운동을 통해 사회적 상호작용이 늘어나면서 고립된 생활 패턴이 변화할 수 있는데, 특히 팀 운동이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소속감과 유대감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운동 목표를 세우고 일상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삶의 주도성을 회복하게 되며 자기 조절능력과 효능감이 향상된다. 규칙적인 운동에 수반되는 식습관과 수면의 개선은 연쇄적으로 건강한 습관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는 심리사회적 요인 외에도 다양한 생물학적 기전이 존재한다. 운동은 시냅스 가소성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비약물 개입인데 여기에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가 관여한다.8 BDNF는 해마의 신경세포 생존과 시냅스 형성을 촉진하며 신경염증을 감소시켜 신경신호 전달을 개선한다. 운동은 BDNF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기억력, 학습능력, 기분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내인성 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 시스템도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중추신경계에서 신경전달 물질의 방출을 조절하고, 통증 전달을 차단하는 진통작용을 하며, 시상하부에 작용하여 식욕과 대사 조절에 관여한다. 또한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수용체를 통해 염증반응을 억제하고 면역 항상성을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 최대 심박수70-80%의 중강도 이상의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은 내인성 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일명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기분 향상, 불안 완화, 통증 억제, 스트레스 억제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BDNF의 상승을 유발하여 해마 중심의 신경 가소성 강화에도 관여한다.9

운동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개입은 정신과 진료에서 ‘보조적’ 접근이 아니라, 핵심적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통해 환자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모든 환자가 당장 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방의 기술이 아니라 ‘상담의 기술’이다. 라이프스타일 개입은 환자와 함께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를 강화하며, 점진적 변화를 격려하는 과정이다.

“운동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하면 지속할 수 있을지를 함께 찾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정신과의사가 기존의 치료적 관계에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며, 오히려 라이프스타일 처방에 적합한 임상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신과의사는 바로 그 ‘변화의 코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의료진 및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흔히 제기하는 우려 중 하나는, 동기 부여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 신체활동을 권장하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Glowacki (2017) 우울증 환자들이 신체활동에 참여하는 영향을 미치는 장애 요인을 조사했는데, 운동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활동으로 인식하거나 자기 효능감이 낮고, 시간이나 자원(: 시설, 장비 ) 부족하다고 느끼는 환자일수록 신체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경향을 보였.10 반면, 운동의 이점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에 일정한 구조를 부여하며, 적절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만보계나 운동 일지와 같은 건강 행동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있는 도구를 활용할 있는 환자들은 신체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을 보였다.10 우울증 치료로 운동을 처방받은 환자의 치료 순응도는 약물치료 및/또는 정신치료를 받는 환자의 순응도와 유사한 수준으로 보고된다.11 따라서 의료진은 환자가 신체활동에 참여할 때 흔히 마주치는 장애 요인들(예: 시간, 자원, 동기)을 사전에 고려하고, 치료 전과 치료 기간 동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의료진이 활용할 수 있는 상담 전략 중 하나는 '5A 접근법(질문하기Ask, 조언하기Advise, 평가하기Assess, 돕기Assist, 계획 세우기Arrange)'이다.12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환자의 장애 요인, 선호도, 변화에 대한 준비를 고려해 5A를 적용하며 신체활동 증진을 위한 상담을 진행할 때 다루어야 할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질문하기 (Ask)

  • 환자의 신체활동 습관에 대해 질문한다.

조언하기 (Advise)

  • 신체활동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상 이점을 설명한다.
  • 우울증 환자에게 권장되는 신체활동 지침을 안내한다: 3 이상, 회당 45~60분간의 중간 강도 활동.

평가하기 (Assess)

  • 환자가 신체활동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평가한다.
  • 환자의 신체 활동에 대한 선호도와 장애 요인을 파악한다.

돕기 (Assist)

  • 환자가 권장 수준에 도달할 있도록 점진적으로 활동을 늘리도록 격려한다.
  • 행동 활성화 기법을 활용해 장애 요인을 극복하고 순응도를 높인다.
  • 운동 전문가와 협력해 순응도를 높이고 나은 결과를 유도한다.

계획 세우기 (Arrange)

  • 환자와 함께 신체활동을 추적하고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있는 전략을 수립한다.

 

라이프스타일 처방은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의사 본인 역시 삶의 리듬과 건강을 회복하며 진료의 소진을 줄이고, 치료자 자신이 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의사가 건강한 환자를 만든다’는 말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삶을 회복할 때, 환자도 삶의 회복을 믿을 수 있게 된다.

 

본 자료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기고문으로, 한국룬드벡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Noordsy, D. L. (2019). Applied Lifestyle Psychiatry.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Publishing.

2. Cooney GM, Dwan K, Greig CA, et al. Exercise for depression.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3 Sep 12;2013(9):CD004366.

3. Mead GE, Morley W, Campbell P, et al. Exercise for depression.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08 Oct 8;(4):CD004366.

4. Rimer J, Dwan K, Lawlor DA, et al. Exercise for depression.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2 Jul 11;(7):CD004366.

5. Abrantes AM, Strong DR, Cohn A, et al. Acute changes in obsessions and compulsions following moderate-intensity aerobic exercise among patients with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J Anxiety Disord. 2009 Oct;23(7):923-7.

6. Rector NA, Richter MA, Lerman B, et al. A Pilot Test of the Additive Benefits of Physical Exercise to CBT for OCD. Cogn Behav Ther. 2015;44(4):328-40.

7. Jazaieri H, Goldin PR, Werner K, et al. A randomized trial of MBSR versus aerobic exercise for social anxiety disorder. J Clin Psychol. 2012 Jul;68(7):715-31. 

8. Szuhany KL, Bugatti M, Otto MW. A meta-analytic review of the effects of exercise on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J Psychiatr Res. 2015 Jan;60:56-64

9. Matei D, Trofin D, Iordan DA, et al. The Endocannabinoid System and Physical Exercise. Int J Mol Sci. 2023 Jan 19;24(3):1989.

10. Glowacki K, Duncan MJ, Gainforth H, et al: Barriers and facilitators to physical activity and exercise among adults with depression: a scoping review. Ment Health Phys Act. 2017;13:108–119.

11. Rethorst CD, Trivedi MH: Evidence-based recommendations for the prescription of exercise for major depressive disorder. J Psychiatr Pract 19(3):204–212, 2013 23653077.

12, Carroll JK, Antognoli E, Flocke SA. Evaluation of physical activity counseling in primary care using direct observation of the 5As. Ann Fam Med. 2011 Sep-Oct;9(5):416-22.